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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제학

약과 약학이란? 약의 시대별 발견과 발전 과정 정리

by ppinu 2026. 1. 26.

약과 약학의 발전 과정

 

제제학은 약학 전공자라면 가장 처음 접하게 되느 과목이지만 처음에는 "이걸 왜 이렇게 자세히 배우지?" 라는 생각이 들기 쉽다. 특히 약대 저학년이나 제약회사 입사를 준비하는 경우, 이 개념을 초반에 제대로 이해하느냐에 따라 이후 제제학, 약물전달학, 품질관리 과목의 이해도가 크게 달라진다. 이 글에서는 제제학의 바탕이 되는 약과 약학이 무엇인지, 어떻게 발견되고 개발되어 왔는지 시대의 흐름에 맞게 정리한 글이다.

1. 약과 약학

1.1 선사시대의 약 - 약의 시작은 '치료'가 아니라 '경험' 이었다.

오늘날의 약학은 과학을 기반으로 하지만 그 출발점은 반복된 경험과 관찰이었다. 선사시대의 약은 체계적인 이론보다는 "무엇이 몸에 도움이 되는가"를 몸으로 익힌 결과였다. 

고약물학적 연구들은 선사시대에 약용식물의 이용을 입증하고 있다. 인류의 태초부터 약에 관한 일은 일상생활의 일부분이었다. 많은 수메르의 쐐기문자의 점토판들에는 약물의 처방을 기록하고 있다. BC 3000년경의 이라크 샤니다르 유적과 같은 인류의 가장 오래된 몇몇 발굴지를 보면 선사시대 사람들이 약용 목적으로 식물을 채집하였다는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다. 인도에서도 BC 6세기경 힌두 최초 전통약물인 아유르베다에 관한 기록이 고대 인도의 외과의사인 수슈르타의 저술인 수슈르타 삼히타에 나타나 있다. 그 외 고대 인도 철학자들이 저술한 의서들로 카라카 삼히타와 샤른가다라 산히타가 알려져 있다. 

1.2 고대사회의 약

이집트 의술에 대해 남아있는 상당한 기록들에는 보다 구체적인 처방으로 조제된 많은 제형들과 함께 제제학적으로 한층 세련되었음을 보여준다. BC 1550년의 에버스 파피루스와 BC 16세기 에드윈 스미스 파피루스와 같은 파피루스에는 고대 이집트의 약물과 처방에 관한 기록이 남아있다. 그 후 이어진 천년 기간 중에 서구 현대의료의 뿌리가 에게 해 유역의 그리스 문명의 전성기에서 일어났다. 다수의 그리스 약들은 식물로부터 만들어졌고, 서구에서 위대한 최초 식물연구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제자인 테오프라스토스에 의해 성취되었다. 고전적인 고대 약물은 갈렌과 함께 절정에 도달하였고, 그를 추종한 저술가들은 창의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의 업적에 대한 수집가와 해설자들로 되는 경향이 있었다. 의술가들 사이에 갈렌의 영향이 너무 만연되어 그의 치유적 접근의 필수사항에는 일반인들의 자신의 고통 치료방법을 설명하기 위해 민속과 미신이 혼합되었다. 

이 시기의 특징은 '새로운 발견'보다는 기존 이론의 권위가 강하게 작용했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약학은 오랫동안 발전보다 정체를 겪게 된다. 

1.3 중세시대의 약

이슬람 국가들 중에는 약과 관련된 것들을 포함한 그리스 저술을 아랍어로 번역하였다. 처음에는 아랍인들은 특히 갈렌과 디오스코리데스의 의서와 같은 그리스 의서의 권위를 전적으로 수용하였다. 그러나 그들이 고도화됨에 따라 라제스와 아비켄나와 같은 이슬람 의사는 그리스 시대 저술에 내용을 추가하였다. 정복자 아랍인들의 원거리 무역을 하는 소도시들도 새로운 약물과 향신료들을 배움의 중심에 두었다. 게다가 아랍 의사들은 불쾌한 맛이 나는 약이 가장 잘 듣는다는 낡은 생각을 거부하였다. 대신에 그들은 환제에 은박과 금박을 입히고 시럽을 이용하는 등 제형을 품격 있고 구미에 맞게 만드는 데에 상당한 노력을 쏟았다. 

이슬람 시대에 제형이 발전했다는 점은 오늘날 제제학의 출발점으로 볼 수 있다. 맛, 안정성, 복용 편의성을 고려하기 시작한 시기이기 때문이다. 

1.4 르네상스와 초기 근대 유럽의 약

르네상스는 근대의 시초이었다. 유럽 중세에 시작되고 다른 문화와의 접촉으로 한층 자극을 받은 변화들은 탄력을 받게 되었다. 갈렌의 잘병과 약에 대한 낡은 개념을 버릴 만큼 시적이 무르익었다. 1600년대 중반부터 1800년대 중반까지 의학 내에세 약의 바른 사용에 대한 논란이 격렬하였을 때 약학은 유럽 대륙에서 전문 직업으로서 자리를 공고히 하였을 뿐만 아니라 학문에도 크게 기여를 하였다는 것은 역설적이다. 1850년 이후에는 약방 과학이 점차 기울면서 약학의 과학적인 지식분야가 대학과 제조 부문에 보다 전문화되게 되었다. 연구에 흥미를 가진 약사들은 약방을 뒤로 하고 기관의 연구실을 찾았다. 

1.5 동양의 약의 기원

동양에서 약물에 대하여 최초로 기록된 자료는 중국의 신농본초경으로 AD 1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자료는 한나라 시대에 작성되었는데 신화 속의 신농에 기인하였따. 이 기록은 최초의 중국약전이라고 할 수 있는데 광물, 식물 및 동물 기원의 365가지의 약을 포함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아스카 시대 말기와 나라 시대 초기 오늘날의 약사와 비슷한 역할을 수행한 사람들이 존경을 받았는데 당시 약사의 사회적 위치는 다이호 율령과 양로율령에 규정되어 있을 정도이다. 

1.6 우리나라 약의 역사

우리나라 상고시대의 원시의술은 다른 원시민족들과 마찬가지로 본능적 충동에서 일어나는 공통된 경험적 치료방법 외에 악정을 숭배하는 마술방법들이 주로 응용되었던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곰과 호랑이가 쑥과 마늘을 먹고 인간이 되고자 금기에 들어간 곰만이 여자로 변하여 웅녀가 되고 환웅과 결혼하여 아들을 낳았는데 이 이가 단군왕검이다. 왕검은 평양에 도읍을 정하여 조선을 열었다. 이러한 단군신화를 보면 고조선시대에는 주술과 약초에 대한 축적된 경험을 바탕으로 질병의 치유를 시도한 것으로 보인다. 조선이 건국된 초기에는 고려의 제도가 계승되었으며, 구료기관으로 조선 초기 임금이 쓰는 약재를 관장하던 내약방, 궁중에서 쓰는 의약의 공급과 임금이 하사하는 의약에 관한 일을 관장하였던 전의감, 일종의 국립 의료기관인 동서대비원, 서민들의 질병치료를 관장하던 제생원, 약재의 재배에 관한 일을 맡아보던 종약색, 의학 등을 설치하였다.

이러한 기록들은 과학적 근거라기보다는 당시 질병과 약을 바라보는 인식 수준을 보여주는 자료로 이해할 수 있다. 이는 이후 경험의 축적이 체계적인 약학으로 발전하는 배경이 된다.

1.7 우리나라 근현대 약학과 약업의 발전

고종 황제가 대한제국을 선포한 원년인 1897년 9월에 생약 추출물제제인 활명수가 세상에 나온 것이 우리나라 근대 제형의 최초이다. 당시 서양 의약학이 들어올 무렵 양한방의 합작품인 것이다. 1999년 헵타플라틴을 주성분으로 하는 SK제약의 선플라가 국산 1호 신약이며 이후 현재까지 20개의 신약이 허가되었다. 생물의약품도 소마트로핀 등의 재조합의약품, B형 간염백신 등의 백신, 자기유래 배양세포 등의 세포치료제, 최근에는 동등생물의약품 등 많은 품목이 식약청으로부터 허가를 받아 해외 수출의약품으로서의 활로를 차족 있는 한편 특허기술 수출도 활발하게 이루어 지고 있다. 현재 정부도 혁신기업을 중심으로 제반 지원에 나서고 있어 제약산업은 국가 전략산업으로서 굳건히 성장할 것으로 기대한다. 

이처럼 약과 약학은 단순한 역사 지식이 아니라 현재 제제학, 신약개발, 바이오의약품으로 이어지는 흐름의 출발점이다. 그래서 약대와 제약회사에서는 가장 먼저 '약이 무엇인가'를 이해하는 데서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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