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캡슐 속 숨겨진 동물성 성분, 젤라틴의 정체
우리가 먹는 캡슐 제제의 약 80% 이상은 젤라틴으로 만들어진다. 젤라틴은 소나 돼지의 뼈, 가죽 속에 들어있는 콜라겐을 열수로 추출해 정제한 단백질이다. 제약사들이 젤라틴을 선호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원료값이 저렴하고, 산소 차단 능력이 뛰어나며, 무엇보다 체온($37^\circ\text{C}$) 부근에서 아주 매끄럽게 녹아 약물을 신속하게 방출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엄격한 비건이나 종교적 이유(할랄, 코셔 등)로 특정 육류를 피해야 하는 사람들에게 젤라틴 캡슐은 복용 자체가 불가능한 장벽이 된다.
식물성 캡슐의 주역, HPMC란 무엇인가?
비건을 위한 대안으로 가장 널리 쓰이는 소재는 **HPMC(Hydroxypropyl Methylcellulose)**다. 이름은 어렵지만, 원료는 단순하다. 소나무나 면화의 섬유소(셀룰로오스)를 추출해 화학적으로 개량한 성분이다. 젤라틴과 달리 완전히 식물성 원료에서 오기 때문에 비건 인증이 가능하며, 유전자 변형(GMO)이나 광우병(BSE) 같은 동물 유래 질병 우려로부터 자유롭다는 강점이 있다. 현재 글로벌 시장에서 식물성 캡슐 수요는 매년 두 자릿수 이상 성장하고 있으며, 프리미엄 영양제 라인부터 점차 도입이 확산되는 추세다.
실무자가 분석하는 젤라틴 vs HPMC의 기술적 차이
제제 연구원 입장에서 두 소재를 비교할 때 가장 중요하게 보는 것은 '수분 함량'과 '용출 안정성'이다. 아래 비교 데이터를 보면 왜 특정 약물에는 반드시 식물성 캡슐을 써야 하는지 알 수 있다.
| 구분 | 동물성 젤라틴 (Gelatin) | 식물성 HPMC (Cellulose) |
| 수분 함량 | 13% ~ 16% (높음) | 2% ~ 5% (매우 낮음) |
| 가교 결합 | 발생 위험 (시간 지날수록 안 녹음) | 거의 발생하지 않음 (안정적) |
| 수분 전이 | 습기에 약해 캡슐이 끈적임 | 습기에 강해 원형 유지가 잘 됨 |
| 용출 패턴 | 위장에서 즉각적으로 터짐 | 젤라틴 대비 다소 느리거나 편차 있음 |
| 제조 단가 | 저렴함 (대중적) | 젤라틴 대비 약 2.5~3배 비쌈 |
실무적으로 수분에 민감한 약 성분(유산균, 일부 비타민 등)을 담을 때는 HPMC가 압도적으로 유리하다. 젤라틴 캡슐은 자체 수분 함량이 높아 내부 약물을 눅눅하게 만들 수 있지만, HPMC는 건조한 상태를 유지해주기 때문이다.
현장에서 마주하는 HPMC의 한계와 트레블슈팅
그렇다면 모든 약을 식물성으로 만들면 좋지 않을까? 실무 현장에서는 몇 가지 난관에 부딪힌다. 첫째는 용출 지연이다. 젤라틴은 체온에서 물리적으로 녹아버리지만, HPMC는 수분을 흡수해 팽창하며 녹는 방식이라 초기 방출 속도가 젤라틴보다 늦을 수 있다. 빠른 진통 효과가 필요한 해열제 같은 경우엔 젤라틴이 유리하다는 뜻이다.
둘째는 정전기 및 기계적 강도다. HPMC는 젤라틴에 비해 정전기가 많이 발생해 충전 공정에서 캡슐이 기계에 달라붙는 사고가 잦다. 또한 너무 건조하면 캡슐이 바스러지기도 한다. 연구소에서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HPMC 캡슐 전용 가습 공정을 세밀하게 세팅하거나, 젤화 보조제(Gelling agent) 배합을 0.1% 단위로 조정하며 최적의 밸런스를 찾는다.
비건 캡슐의 진화: 장용성부터 액상 충전까지
기술이 발전하면서 HPMC의 단점도 극복되고 있다. 최근에는 위산에서는 녹지 않고 장에서만 터지는 '장용성 HPMC 캡슐'도 상용화되었다. 젤라틴으로는 구현하기 까다로운 코팅 공정을 캡슐 소재 자체에서 해결한 셈이다. 또한, 예전에는 식물성 캡슐에 액상 성분을 담으면 캡슐이 깨지는 현상이 잦았으나, 최근에는 씰링(Sealing) 기술의 발달로 오메가3 같은 유성 성분도 식물성 캡슐로 완벽하게 포장할 수 있게 되었다.
결론: 비건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이제 약이나 영양제를 고를 때 제품 뒷면의 '원료명 및 함량'을 확인해보자. '젤라틴(소 가죽)', '돼지피' 같은 문구가 보인다면 동물성이다. '히드록시프로필메틸셀룰로오스' 혹은 'HPMC'라고 적혀 있다면 비건 친화적인 식물성 소재다.
제약회사 실무자로서 조언하자면, 엄격한 비건이 아니더라도 평소 위장이 예민하거나 습기가 많은 곳에 약을 보관해야 한다면 식물성 캡슐이 안정성 면에서 훌륭한 대안이 될 수 있다. 결국 제형의 선택은 환자의 가치관과 약물의 물성을 연결하는 정교한 공학의 영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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