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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제학

고체분산체 제조 공법 비교: 용매 증발법 vs 용융 압출법

by ppinu 2026. 1. 30.

고체 분산체 제조 공법

 

난용성 약물의 구원투수, 고체분산체 제조 기술의 핵심

제약 현장에서 난용성 약물을 다룰 때 가장 골치 아픈 점은 성분 자체가 가진 결정성(Crystallinity)이다. 이 견고한 결정 구조를 깨뜨려야만 체내 흡수가 가능한데, 이때 구원투수로 등판하는 기술이 바로 고체분산체(Solid Dispersion)다. 고체분산체는 쉽게 말해 약물을 친수성 고분자라는 '바다'에 분자 단위로 흩뿌려 놓은 상태를 말한다. 약물이 규칙적인 격자를 잃고 무정형(Amorphous) 상태가 되면, 물에 닿자마자 에너지를 흡수할 필요 없이 즉각 용해된다. 연구자들이 이 고체분산체를 만들기 위해 가장 보편적으로 선택하는 두 가지 길이 바로 용매 증발법과 용융 압출법이다.

용매 증발법(Solvent Evaporation): 열에 약한 약물을 위한 정교한 공정

용매 증발법은 약물과 고분자를 모두 녹일 수 있는 공통 용매(Common Solvent)를 찾는 것에서 시작한다. 두 물질을 액체 상태에서 섞은 뒤 용매만 싹 걷어내면, 고분자 기질 사이에 약물이 갇힌 고체분산체가 남는다. 이 방식의 최대 강점은 '온도'다. 약물을 녹이기 위해 굳이 높은 열을 가할 필요가 없어서, 열에 노출되면 구조가 깨지기 쉬운 예민한 약물 후보군에 최적이다.

실제 산업 현장에서는 분무 건조(Spray Drying) 방식을 주로 결합한다. 안개처럼 혼합액을 뿌려 순식간에 용매를 날려 보내는 방식인데, 덕분에 입자가 아주 고르고 예쁘게 나온다. 하지만 치명적인 단점도 있다. 바로 유기 용매다. 쓰고 남은 용매를 처리하는 비용이 만만치 않고, 혹여나 제품에 잔류 용매가 남을 경우 안전성 문제로 직결될 수 있다. 따라서 공정 관리가 매우 까다로운 편에 속한다.

용융 압출법(Hot-Melt Extrusion): 친환경적이고 효율적인 현대적 대안

반면, 최근 제약 공정에서 대세로 떠오르는 기술은 용융 압출법(HME)이다. 원리는 의외로 간단하다. 유기 용매 대신 '열'과 '압력'을 이용한다. 약물과 고분자 분말을 섞어 압출기(Extruder)에 넣고 고온으로 가열하면 고분자가 엿가락처럼 녹는데, 이때 강력한 스크류 회전으로 약물을 강제로 분산시킨다.

이 공법의 가장 큰 매력은 '연속성'이다. 재료를 넣는 족족 제품이 나오기 때문에 대량 생산에 이보다 효율적일 수 없다. 또한 용매를 전혀 쓰지 않으니 잔류 용매 걱정도 없고 친환경적이다. 다만, 약물이 높은 온도를 견딜 수 있어야 한다는 전제 조건이 붙는다. 융점이 너무 낮아 타버리거나 열에 의해 변성되는 약물이라면 HME 공법을 적용하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

연구자의 선택: 어떤 공법이 더 우월한가?

결국 "어떤 방법이 더 좋은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약물의 '성격'에 달려 있다. 열에 강하고 경제성을 따져야 한다면 당연히 용융 압출법이 승자다. 반대로 약물이 열에 너무 취약하다면 비용이 들더라도 용매 증발법을 택해야 한다.

최근 연구 트렌드는 이 두 방법의 단점을 보완하는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예를 들어, 용융 압출법을 쓰고 싶지만 온도가 걱정될 때는 가소제(Plasticizer)를 섞어 가공 온도를 낮추는 꼼수를 쓰기도 한다. 제제학이라는 학문 자체가 결국 이론과 현실 사이의 타협점을 찾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고체분산체 기술의 고질적인 문제, 재결정화

고체분산체가 만능처럼 보이지만, 사실 모든 제제 연구자들의 밤잠을 설치게 하는 숙제가 하나 있다. 바로 '재결정화(Recrystallization)' 현상이다. 억지로 무정형 상태로 만들어 놓은 약물은 시간이 지나면 다시 자기들의 편안한 집인 '결정 구조'로 돌아가려는 성질이 있다. 유통기한 중에 약이 결정으로 변해버리면 용해도가 뚝 떨어져서 약효가 없어진다. 이를 막기 위해 어떤 고분자를 얼마나 섞어야 할지, 습도를 어떻게 조절할지가 제약사의 핵심 기술력이 된다. 고체분산체는 단순히 만드는 기술을 넘어, 그 상태를 얼마나 오래 유지하느냐의 싸움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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