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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제학

프리포뮬레이션(Preformulation) 핵심 정리

by ppinu 2026. 2. 13.

프리포뮬레이션

제약 R&D 현장에서 새로운 후보물질을 마주할 때마다 설렘과 동시에 중압감을 느낍니다. 신약 후보물질이 도출되었다고 해서 바로 알약이나 주사제로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후보물질의 물리적, 화학적 성질을 정확히 모른 채 제형화를 시도하는 것은 설계도 없이 집을 짓는 것과 같습니다.

지난 몇 년간 제제 연구의 길을 걸으며 세 번의 큰 프로젝트 시행착오를 겪었습니다. 초기 단계에서 약물의 안정성을 간과해 임상 진입 직전에 제형을 전면 수정해야 했던 뼈아픈 경험도 있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깨달은 것은 **프리포뮬레이션(Preformulation)**이 단순히 데이터를 얻는 과정을 넘어, 수조 원 가치의 신약 개발 성공 확률을 결정짓는 전략적 지표라는 사실입니다. 오늘은 성공적인 제제 개발의 출발점이자 나침반이 되는 프리포뮬레이션의 핵심 항목들을 실무자의 관점에서 상세히 정리해 보겠습니다.

1. 프리포뮬레이션의 목적과 단계적 접근

프리포뮬레이션의 궁극적인 목적은 "이 약물을 가장 안전하고 효과적으로 몸속에 전달할 방법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에 과학적인 답을 내놓는 것입니다. 원료 약물(API)의 고유한 물성이 완벽히 파악되어야만 경구 투여용 정제를 만들지, 혈관에 직접 투여하는 주사제를 만들지, 혹은 열에 취약한 성분을 위해 냉동 건조 제형을 선택할지 결정할 수 있습니다.

보통 프리포뮬레이션은 후보물질의 고체 상태 물성 파악에서 시작하여 용해도 분석, 그리고 최종적인 안정성 평가 단계로 진행됩니다. 이 단계에서 수집된 모든 데이터는 향후 '포뮬레이션(제형화)' 단계에서 사용할 첨가제의 종류와 농도를 결정하는 기준이 됩니다.

2. 고체 성질 평가: 약물의 성격 파악하기

2.1 현미경적 관찰과 분체 물성 (Particle Morphology)

현미경을 통해 입자의 크기(Size)와 모양(Habit)을 육안으로 확인하는 것은 프리포뮬레이션의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중요한 단계입니다.

  • 공정성과의 관계: 약물 입자가 바늘 모양(Needle-like)의 침상 구조라면 분말의 유동성이 매우 나쁩니다. 이는 캡슐 충전 시 무게 편차를 유발하거나, 타정기 안에서 가루가 뭉쳐 알약의 무게가 들쭉날쭉해지는 제조 사고로 이어집니다.
  • 해결책 모색: 현미경 관찰을 통해 이러한 특성이 확인되면, 결정 성장 조건을 조절하여 입자 모양을 구형으로 바꾸거나, 밀링(Milling) 공정을 추가하여 입자 크기를 균일하게 만드는 전략을 세우게 됩니다.

2.2 결정다형(Polymorphism)과 물리적 안정성

동일한 화학 구조를 가진 약물이라도 원자 배열 방식에 따라 결정형(Crystalline)과 무정형(Amorphous)으로 나뉠 수 있습니다.

  • 결정다형의 영향: 무정형은 규칙적인 구조가 없어 용해도는 매우 높지만, 습기에 취약하여 보관 중에 서서히 결정형으로 변하면서 용해도가 떨어지고 약효가 변하는 리스크가 있습니다.
  • 실무적 시사점: DSC(차별주사열량분석)나 XRD(X선 회절 분석)를 통해 가장 에너지적으로 안정적인 결정형을 찾는 것이 허가 심사의 핵심입니다. 과거 리토나비르(Ritonavir) 사태처럼 시판 후에 결정형이 변해 제품을 회수하는 비극을 막기 위해 실무자는 이 단계에서 가장 보수적인 선택을 해야 합니다.

3. 용해도와 용출: 생체이용률을 결정하는 관문

약이 우리 몸에서 치료 효과를 나타내려면 일단 체액에 녹아야 합니다. 용해도는 프리포뮬레이션에서 가장 심혈을 기울이는 항목입니다.

  • 용해도 개선 전략: 물에 잘 녹지 않는 난용성 약물이라면 염(Salt)을 형성하거나, 고분자와 섞어 고체 분산체(Solid Dispersion)를 만드는 등 다양한 가용화 기술을 검토해야 합니다.
  • pH-용해도 곡선: 우리 몸의 위(pH 1.2)와 장(pH 6.8)은 산성도가 다릅니다. 각 구간에서의 용해도 프로파일을 알아야만 산성인 위에서 녹지 않고 장에서 녹게 만드는 장용정 개발 여부를 결정할 수 있습니다.
  • BCS 분류(Biopharmaceutics Classification System): 용해도와 투과도에 따라 약물을 1~4군으로 나누는 이 체계는 제제 설계의 바이블입니다. 특히 2군(낮은 용해도, 높은 투과도) 약물의 경우, 용해도를 높이는 기술이 곧 제품의 경쟁력이 됩니다.

4. 막 투과성과 분배계수(Log P): 혈액으로 가는 길

약이 적절히 용해되었다면, 이제 세포막을 통과하여 혈액으로 흡수되어야 합니다.

  • 분배계수(Partition Coefficient): 약물이 기름(옥탄올)과 물 사이에서 어느 쪽으로 더 많이 섞이는지를 보는 지표입니다. Log P 값이 너무 낮으면 약이 세포막을 통과하기 어렵고, 반대로 너무 높으면 지용성이 지나치게 강해 혈액 내로 방출되지 못할 수 있습니다.
  • Caco-2 세포 모델 실험: 실제 장 상피 세포와 유사한 환경을 구축하여 약물의 투과량을 미리 시뮬레이션합니다. 이를 통해 실제 임상 시험에서의 흡수율을 높은 확률로 예측할 수 있습니다.

5. 해리상수(pKa)와 이온화 평형

대부분의 약물은 약산이나 약염기의 성질을 띱니다. 약물의 pKa 값을 알면 특정 pH 환경에서 약물이 얼마나 이온화되는지 계산할 수 있습니다. 이온화되지 않은(전하를 띠지 않는) 상태가 세포막을 통과하기에 가장 유리하므로, pKa 데이터는 약물이 주로 위에서 흡수될지 혹은 장에서 흡수될지를 예측하는 결정적인 기초 자료가 됩니다.

프리포뮬레이션은 제제 연구의 통찰력이다

프리포뮬레이션 단계에서 수집한 작은 데이터 하나하나가 모여 결국 제품의 유효기간과 환자의 복용 편의성을 결정합니다. 실무자에게 요구되는 역량은 단순히 분석 기기를 조작하는 능력이 아닙니다. 얻어진 데이터를 다각도로 분석하여 "이 약물은 광분해성이 있으니 차광 용기를 써야겠다" 혹은 "용해도가 낮으니 미세화 공정이 필수적이겠다"라고 판단할 수 있는 통찰력입니다.

이 기초적인 분석 과정이야말로 환자에게 안전하고 일관된 품질의 의약품을 전달하는 제약 공학의 가장 정직한 시작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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